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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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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이란 뜻으로 1974년 닛폰햄이 구단을 매입할 당시 팬 공모로 새롭게 개칭한 이름이며, 팀을 줄여서 부를 때는 보통 ハム[17] 혹은 日ハム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닛폰이 일본을 강조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로 니혼햄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영문표기(Nipponham)나 실제 발음(닛폰하무)에서 보다시피 잘못된 명칭이다.
2. 구단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 -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편집]
2003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삿포로 돔을 제 1홈구장으로 사용했다가 2023년 신구장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로 이전했다. 건설 비용은 무려 600억엔.[18]
기존에 사용하던 홈구장인 삿포로 돔이 시 소유이기에 연간 26억엔을 삿포로시에 지불해야 했고, 경기 종료 때마다 트레이닝 기구를 일일이 치워야 하는 불편함까지 있었다. 게다가 인조잔디[19] 등 주요 시설 보수에 제약이 걸리는 까닭에 닛폰햄은 2016년부터 신구장 이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사업총괄본부장 마에자와 켄이 주도했고, 닛폰햄과 기타 프로야구 팀 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17년 10월 시점에서는 삿포로시와 키타히로시마시 두 곳으로 후보지가 좁혀졌으며, 두 시 모두 신구장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이후 키타히로시마시에 새 구장 건설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20년에 착공, 2023년에 완공하였다. 공식PV 건설 도중에 온천이 터져서 온천시설을 같이 둘 계획이며, JR 홋카이도에서는 2027년에야 신구장 앞에 역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기사
2023년에는 신구장으로 옮기면서 신구장 이외의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20] 원래 도쿄 돔과 홋카이도 지역 곳곳에서 지방구장 경기를 치렀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 도쿄 : 도쿄 돔 - 연 10회 이하 개최. 평소에 9경기 가까이 치른다. 따로 도쿄돔 시즌권도 판매.
- 아사히카와 : 스타루힌 구장 - 연 2회 개최.
- 오비히로 : 오비히로노모리 야구장
- 쿠시로 : 쿠시로 시민구장
- 하코다테 : 오션 스타디움 - 최근 몇 년 간 계속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는 중.
- 시즈오카 : 시즈오카 쿠사나기 구장[21] - 비도쿄, 비홋카이도 경기장.
홋카이도 지방경기의 경우 주로 평일에 개최하며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시에 있는 스타루힌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22] 한편 스타루힌 구장은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야간경기 개최 구장으로 기록되었다.
이외에도 홈이 치바현에 있는 2군도 종종 홋카이도에서 2군 경기를 치른다. 보통 1군이 사용하는 구장은 가지 않고 몬베츠, 시베츠, 토마코마이, 네무로 등 1군 경기가 치러지기는 어려운 구장에서 경기를 한다.
4. 유니폼[편집]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응원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중수 추이[편집]
7. 팀 컬러[편집]
현재는 투타 모두 부진한 암흑기에 빠진 팀이지만, 과거는 시기에 따라 팀컬러가 나뉜다.
고라쿠엔, 진구, 도쿄 돔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시절에는 좁은 구장을 사용했기에 이 구장 조건에 맞게 전반적으로 타격이 강점인 팀이었다. 오오스기 카츠오, 장훈, 토미 크루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나이젤 윌슨, 다무라 후지오 등등 수많은 강타자들이 이 팀의 역사를 수놓았다.
이랬던 팀 컬러는 2004년 홋카이도로 이전하며 투수 중심의 팀컬러로 바뀌게 되는데, 새로 옮긴 삿포로 돔이 홈런 테라스 설치 이전의 후쿠오카 돔이나 나고야 돔에 비견되는 넓은 외야와 높은 펜스를 가진데다가, 다목적 구장이라는 점 때문에 파울지역 또한 광활한 전형적인 투수 구장이었기 때문. 특히 넓은 외야 때문에 닛폰햄은 신조 츠요시, 모리모토 히초리, 이나바 아츠노리, 이토이 요시오, 양다이강 등 발이 빠르고 수비력이 좋은 외야수를 위주로 타선을 꾸렸고, 슈퍼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중심으로 다케다 마사루, 야기 토모야 등이 뒤를 받쳐주고 다케다 히사시, 마이클 나카무라, 마스이 히로토시 등의 불펜진이 걸어잠그는 단단한 투수진을 갖추어 기동력 좋은 중거리포들의 연속 안타와 도루로 점수를 뽑고 강력한 투수진과 철벽수비로 점수를 내주지 않는 야구를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에는 타격 또한 좋아지며 10년 가까이 퍼시픽 리그의 강팀으로 군림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독보적인 퍼시픽 리그 최강팀이었으며, 2010년대에는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치고 올라왔음에도 파이터즈 역시 호크스와 항상 리그 우승을 놓고 다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세대교체도 잘 되어 다르빗슈가 가니 오타니 쇼헤이가 오고 이나바가 가니 나카타 쇼가 오는 식으로 오랜 시간 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16년 오타니가 이끈 우승을 마지막 불꽃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잇따른 드래프트 1픽의 실패와 팜의 황폐화, 메이저 리그로 진출한 오타니와 아리하라, FA로 떠난 양다이강이나 레어드, 불미스러운 일로 방출된 나카타와 니시카와 등 유출되는 전력에 비해 세대 교체가 진행되지 않았고, 이 참에 리셋버튼 한번 누르자는 팀의 리빌딩 기조로 인해 노쇠화가 온 베테랑들을 대거 방출하며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삿포로 이전 이후로는 넓은 투수구장 탓에 장타자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팀이었으나, 2023년 상대적으로 좁은 편인 에스콘 필드로 이전 후 타자들이 단체로 잠재력이 만개하기 시작해 기존의 이토 히로미를 필두로 수준급의 투수진에 더해 만나미 츄세이, 노무라 유키, 키요미야 코타로 등 젊은 타자들이 잠재력을 뽐내고 있어 다시금 비상할 희망이 보이고 있다.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편집]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아리하라 코헤이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이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이처럼 1라운더들이 다른 팀에 비해 대박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해 아마야구 최고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를 무조건 지명하기 때문이다. 대졸 최대어가 고졸 최대어보다 평가가 좋은 경우에는 대졸을 지명하기도 한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방식 때문인데, 해당 선수가 2팀 이상의 지명을 받았을 경우 제비뽑기로 팀을 선정하지만 딱 한 팀만 그 선수를 지명했을 경우 무조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선수를 제비뽑기를 통해 뽑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일본에서는 특급선수들이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선호하기에[23] 다른 구단에서 A선수를 지목했을때 해당 선수가 "x까 나 요미우리 아니면 안가!"를 선언하고 사회인야구로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에 가고 싶어서 2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거부한 초노 히사요시.[24] 이렇게 되면 구단들은 1픽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선수가 드래프트 전에 선호하는 팀을 선언하면 다른 팀들은 해당 선수 지명을 피한다. 그러나 파이터즈는 그런거 다 필요없고 잘하면 무조건 "너 내꺼될 준비해!"라며 지명했다.[25]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명한 선수들이 못 하더라도 중박은 쳐주는 편이다.
닛폰햄의 경우 일본 최북부의 홋카이도라는 연고지 위치[26] 도 그렇고,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서 물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소신있는 지명 방식 및 체계적인 육성시스템 덕에 1라운더 대박이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로또 전쟁: 일본의 신인지명 이야기라는 글을 참조.
2017년에 또 그렇게 지명했는데 무려 7구단이나 지명을 한 키요미야 코타로를 제비뽑기에 성공하면서 당당하게 데려왔다! 쿠리야마 감독이 추첨픽을 할 때마다 삽질을 해서 GM 보좌인 키다 마사오가 왼손으로[27] 뽑았는데 결과는 대성공.
그리고 2018년 드래프트에서도 당초 내야수 최대어인 네오 아키라를 뽑으려고 추첨에 지원했으나 네오는 추첨에서 승리한 주니치 드래곤즈로 갔는데, 어부지리로 고시엔 준우승팀 가나아시 농고의 에이스인 요시다 코세이를 데려왔다.[28]
드래프트 뿐만 아니라 선수 선방, 트레이드 면에서도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워크에씩 면에서 평판이 나빴던 선수들을 과감히 데려와서 갱생시키는 사례가 많아[29]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날려먹은 사례
- 스가노 도모유키는 대학야구를 씹어먹고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당대 최고 선수로 많은 구단들이 탐을 냈었다. 그러나 스가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 타츠노리의 외조카였기에 "나 요미우리 갈꺼다."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1픽으로 뽑더라도 계약을 거부할 확률이 99%였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눈치를 보며 빠졌지만, 상남자의 닛폰햄은 "우린 너다!"라며 지명.[32] 제비뽑기에서 승리하며 지명권을 따냈지만 스가노는 당연히 지명 거절을 하며 재수를 선언했다.[33] 닛폰햄은 멀쩡한 1픽만 날려버린 셈이다. 그리고 스가노는 포스팅 시스템 인정하지 않는 요미우리 방침[34] 과 부실한 선발투수 사정이 합쳐져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재밌게도 닛폰햄이 그 다음 픽으로 뽑은 선수가 2022년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수위타자 타이틀을 수상한 마츠모토 고와 요미우리를 거쳐 치바 롯데의 외야수로 있는[35] 이시카와 신고,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3회 수상을 거두면서 소프트뱅크로 FA 대박을 친 콘도 켄스케, 올스타 2회 수상한 팀 선발자원 우와사와 나오유키. 정작 그 해 요미우리 드래프트는 좌완 선발 이마무라 노부타카, 히로시마로 간 이치오카 류지 이외에는 모두 망했으며, 2012년 드래프트에서 스가노를 뽑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실패하는 등 큰 대가를 치렀다.
- 2013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소신 픽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첫 제비뽑기 3연패를 달성하며 1라운드 꼴찌 픽을 하게 된다. 이는 전년도 꼴지팀이 1라운드 꼴찌 픽을 한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닛폰햄은 울면서 와타나베 료를 지명했다.[36][37] 와타나베 료는 18시즌 까지는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시즌엔 공갈포로, 20시즌부터는 4번 나카타 쇼를 이은 5번 타자로서 쏠쏠히 활약해주었다. 허나 22시즌엔 전혀 활약하지 못했고, 2:2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으로 이적했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대박을 친 사례
- 다르빗슈 유는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중 한명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38] 그러나 닛폰햄은 신경 안 쓴다며 당당하게 소신픽 했고, 단독 1픽을 뽑아내며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다르빗슈는 프로에 와서 금연을 하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20세의 어린 나이부터 일본프로야구를 폭격하고 거액의 포스팅비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건너갔다.
- 오타니 쇼헤이는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투수로써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많은 구단들도 관심을 가졌지만 오타니는 "나 메이저 갈꺼임 건들지 마셈"이라고 선언해 다들 눈치보고 빠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상남자 닛폰햄 파이터즈는 또 다시 "어쩌라고."라며 패기있게 1픽으로 지명,[39] 결국 지명권을 따낸후 설득을 거쳐 오타니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40] 그리고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에서 역대급 성적을 찍으며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고, 선배 다르빗슈를 따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했다. 다만 포스팅 비용에 관해서는 네임밸류와 성적에 비하면 좀 낮은 편인데, 이는 MLB와 NPB간의 협약에 의해 상한치를 20M으로 고정해버린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다르빗슈의 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책정되었다. 물론 상한치가 20M이라 매우 큰 돈이긴 하므로 닛폰햄 입장에서 큰 이득이긴 하지만 오래오래 잘 써먹고 비싸게 판 다르빗슈에 비해서 몇년 못 쓰고 싸게 판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최근에는 키요미야 코타로, 요시다 코세이 등을 지명했는데 성장이 더디면서 드래프트 명가라는 명성의 빛이 바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그 해 최고의 선수를 뽑는다는 전략으로 1순위 지명에서 네오 아키라[41] , 사사키 로키 등을 지명하면서 다른 구단과 경합했다가 추첨에서 패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쓸만한 선수들도 타구단에 뺏기고, 원래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의 2티어급 선수들을 1순위로 지명하면서 처음에 구상했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등 상남자 스타일 지명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중이다. FA 등 외부에서 전력을 보강할 생각이 없다면 아마추어 시절의 화제성만 쫓지 말고 히로시마처럼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쓸만한 선수들 단독으로 낚는 틈새전략을 취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결국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최대어인 하야카와 타카히사를 포기하고 연고지 출신이며 대졸 투수 중 2-3번째로 평가받던 이토 히로미 단독지명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이토는 첫 시즌부터 선발진에 합류하여 연이어 호투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2020 도쿄 올림픽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차출되어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2023년 콘도 켄스케의 FA 보상 선수로 타나카 세이기를 데려오면서 졸지에 1순위 지명 선수를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타나카를 놓치고 1순위로 데려온 선수가 2021년 퍼시픽 리그 최우수 중간 계투인 호리 미즈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타나카에게 나름의 기대를 건 셈. 그리고 그 타나카는 마무리 투수로 47경기 25세이브를 기록하며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편집]
괴짜 야구선수로 유명한 신조 츠요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비범한 장난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조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역대 모기업 중에 특촬물 제작기업이던 토에이 산하의 야구단이었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특촬물과 연관지어서 장난치기도 했다.[42]
이후 신조가 닛폰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난 후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모리모토 이후 묘한 정신 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지만, 이토이도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를 찍고 한신 타이거스로 가버렸다.
2022년 신조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팬들은 감독부터 선수까지 어떤 개그가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워크에씩을 중요시하는 신조의 방침에 따라 심한 개그는 치지 않는 편. 대신 부임 첫 해에는 신조 스스로 <빅 보스>라고 칭하며 시즌을 진행했다. 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1년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실명으로 돌아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7.3. 골든 글러브[편집]
팀은 1993년부터 2020년까지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최소 1명씩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었다. 이는 퍼시픽 리그 최장기록. 특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5회 수상)가 거쳐갔고 나카타 쇼가 지켰던 1루수 부문은 무려 수상 16회. 그러나 2021시즌, 아무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고,[43] 28년간의 전통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8. 이야깃거리[편집]
- 구단 공식 응원가로 파이터즈 찬가가 있는데, 1977년에 제작된 곡으로 퍼시픽 리그 구단가 중 가장 오래된 응원가이기도 하다. 참고로 원판 가수는 애니송 가수로 유명한 사사키 이사오.
- 2022 시즌부터 이닝 교대마다 키츠네 댄스(여우 댄스) 타임이 생겼다. The Fox를 차용해서 중독성있는 음악과 귀여운 춤동작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2022년도에 일본에서 The Fox가 역주행까지 하였으며 유행에 편승해 Ylvis가 삿포로 돔에서 The Fox를 열창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22 홍백가합전에서 닛폰햄 파이터즈 치어리더들이 노기자카46와 이 곡으로 키츠네 댄스를 선보여서 간접적으로 출현하는 쾌거를 이뤘다.[44]
- 닛폰햄의 야구 중계 시 닛폰햄 타자가 홈런을 치면 'It's going! It is Gone! See You Later! Good Bye!'라는 영어 멘트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콘도 유지(近藤祐司) 아나운서 특유의 홈런콜이다. 그의 홈런콜만 모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2022년 시즌을 끝으로 닛폰햄 중계를 그만두었기에 아쉽게도 현재는 들을 수 없다.
- 세레소 오사카와 모기업이 닛폰햄으로 같기에 양 구단 관계자들이 서로의 구장을 찾아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삿포로 돔에서 세레소 서포터들이 "닛폰햄 고맙습니다"라는 걸개를 걸어 놓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8.1. 라이벌리[편집]
- 팀 자체가 그동안 뭔가 뚜렷한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해서 이렇다 할 라이벌이 없었다. 토에이 시절에는 도쿄 오리온즈 정도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두 팀 다 바닥에서 헤매는 팀이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라이벌까지 챙길 여력이 안 됐고, 오리온즈가 롯데에게 넘어가고 일본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서는 그나마 그런 라이벌 의식도 희석되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사이타마로 이사오자 간토 지역의 팀이라는 배경으로 세이부를 라이벌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황금기 시절의 세이부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서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냥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또 같은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이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도 엮이려고 했으나 일단 그 홈구장의 세입자 신세인데다가 리그 자체가 달라서 시범경기 때를 제외하면 붙을 일이 거의 없었고, 1981년 일본시리즈를 제외하면 일본시리즈에서도 맞붙지 못했다. 이후 홋카이도로 이전하게 되어 안 그래도 희미했던 라이벌 의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전 후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를 두번 더 치렀지만 이미 그 때는 같은 홈구장을 쓰는 덕아웃 라이벌이 아닌 도쿄의 전국구 강팀 대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지역 팀의 대결구도가 돼서 딱히 라이벌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 현재 라이벌로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팀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본래 2000년대엔 닛폰햄이 파리그 최강팀이었으나, 호크스도 항상 닛폰햄의 자리를 위협하는 2인자 그룹에 있었고 2010년대 강팀으로 성장한 호크스가 급격히 치고 올라와 최강팀이 되며 2010년대 초중반에는 파이터즈와 파리그 우승을 두고 항상 다투는 사이가 되었기에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주 맞붙어서 볼만한 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게다가 NPB의 최북단 팀과 최남단 팀이자 각각 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팀이라는 관계가 작용해서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닛폰햄 팬들은 소프트뱅크를 라이벌시 한다. 이건 소프트뱅크 팬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전통의 라이벌인 세이부 다음으로 라이벌시하는 중이다.
- 또 하나의 라이벌은 오릭스 버팔로스가 있는데, 악연보다는 7회 초 오릭스의 럭키 세븐 타임에 나오는 개그 멘트 때문. 이에 장난식 라이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9. 선수단[편집]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역대 선수[편집]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홋카이도 시대에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름아닌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하여 텍사스 레인저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현재는 김하성과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다.
또 한 명을 꼽자면 역시 10년만에 우승을 가져다 준 오타니 쇼헤이.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어마어마한 구속과 함께 한국 대표팀을 완벽하게 틀어막아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해 투타겸업을 완벽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야구팬 뿐만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지도가 생겼다.
이외에 공수겸장 2루수 타나카 켄스케[45] ,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해온 강타자 이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카네코 마코토와 모리모토 히초리, 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